기타 잡다한 이야기

오픈런 현상 – 치열한 경쟁과 그 이면의 현실

김복꾼 2024. 1. 3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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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영어에서 ‘오픈런’이란, 폐막 날짜를 정해 놓지 않고 무기한으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개점 시간을 기다리다가 매장이 열리면(open) 바로 달려가(run) 한정된 상품을 구매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샤넬을 비롯한 명품 매장이 대상이었으나, 현재는 시계, 운동화, 음식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사람들은 왜 사회에서의 경쟁으로 모자라, 여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소비의 영역에서마저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무엇이 사람들을 불꽃 튀는 경쟁 속으로 이끄는 것일까?

 

2. 본론

우선, 과시욕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큰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남들은 얻지 못한’ 물건을 가지게 되면, 단순히 재력을 뽐내는 것을 넘어 소비와 관련된 독특한 능력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시욕을 자극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오픈런 현상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을 새벽부터 기다리게 만드는 본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현대 한국인들은 입시경쟁, 학점경쟁, 취업경쟁, 승진경쟁 등 숨 막힐 정도로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 끊임없이 들어선다. 끝이 없기에 더욱 막막하다. 설사 수년 수십 년을 노력한다 한들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진짜’ 경쟁에 익숙해져서, 경쟁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무디어져서, 사람들은 오픈런을 오히려 연습 게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된다. 오픈런은 결국 기다리는 것이 핵심이기에 크게 어렵지 않고, 실패의 대가도 크지 않다. 거기에다가 성공 확률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하루만 제대로 임해도 성공할 수 있으며 안되더라도 며칠만 더 투자하면 원하던 목표를 쟁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오픈런과 같이 쉽고 가벼운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무언가를 쟁취해내는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위안을 얻는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부담 없이 임하여 위안을 얻어갈 수 있다고 한들,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또 다른 경쟁에 제 발로 뛰어든다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모순점은 ‘현실도피’로 설명할 수 있다. 현실도피는 괴로운 현실에 지친 이들이 어떻게든 그 현실을 잊고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일컫는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이미 익숙’하면서도 ‘무언가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된다. 이를 오픈런 현상에 대입하면, ‘현실’은 사회에서의 경쟁을 일컫게 되며 ‘몸부림’의 결과는 오픈런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오픈런에 참여함으로써 겪게 되는 경쟁은, 이미 익숙하면서도 쉽게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사회에서의 경쟁에 지치면 지칠수록,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한정된 수량의 상품은 경쟁 심리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겨 남들은 갖기 어려운 상품을 획득한다면, 묘한 성취감과 과시욕을 느낀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지만 오픈런 현상은 그 당연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표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단순한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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