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No Rights Rise Above Other Rights

김복꾼 2024. 1. 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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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certain rights are so fundamental that they rise above utilitarian calculations ㅡ be they natural, or sacred, or inalienable, or categorical - how can we identify them? And what makes them fundamental?>

- M. J. Sandel, Justice, 2009, p. 33.

 

 

생명권은 분명히 중요한 권리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월하고 우선시되어야 할 절대적인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강간으로 임신하게 된 여성이 있을 때,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낙태할 권리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할 만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권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자유권이 되었든, 평등권이 되었든, 건강권이 되었든, 모두가 동의할 만큼 절대적이고 우월한 권리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논제는 전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Rights that are so fundamental that they rise above utilitarian calculations’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 글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그러한 절대적 권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설명할 것이다. 이후 ‘so fundamental’한 권리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기본권끼리 충돌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저 기계적으로 공리주의적 계산을 적용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공리주의적 계산에 항상 우선하는엄청난 권리가 존재한다면, 그 권리는 어떻게 결정될까?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해야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합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간에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생명권이나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권리들은 각자의 배경과 무관하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롤스의 ‘overlapping consensus’ 이론에 사용된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사람들의 형이상학적, 도덕적, 종교적 선이해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합의에는 도달하기 어려워도, 이를 배제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권이나 존엄성과 같은 권리조차 모두의 동의를 얻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중 일부는, 개개인의 생명권이나 존엄성보다 국가와 일왕에의 충성을 우선시해 비참하고 무의미한 자살 공격을 영광스럽게 여기고는 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생명권을 타 권리에 비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고 여겼다면, 전쟁으로 자국민 및 상대 시민들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평화를 통해 최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철학자 Larmore는 일찍이 "On the matters of supreme importance, the more we talk with one another, the more we disagree"라고 말하였다.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각자의 배경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것이 설사 생명권이나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권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공리주의적 계산에 항상 우선하는권리가 존재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각 권리의 우열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 각 권리의 중요성은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항상 우선한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권리 간 서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항상 우선하는 권리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생명권이다. 이에 또다시 생명권의 예시를 들고자 한다. 앞서 소개했던 강간으로 임신한 여성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여성의 낙태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물론 생명권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지만,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권이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 임신하게 된 경위, 여성이 처한 상황, 윤리적인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비로소 해당 상황에서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다. 식물인간의 사례도 고민해볼 수 있다. 뇌사로 인해 의식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나, 연명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수십 년을 더 생존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생명권과 존엄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권리인가? 생명권이항상 우선하는 권리라면, 이 환자는 식물인간의 상태로 비참하게 수십 년간 살아야 한다. 존엄성이 항상 우선하는 권리라면, 이 환자는 더 생존할 수 있음에도 생명을 잃게 된다. 환자 본인 및 가족들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보다는, 해당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환자 본인 및 가족들의 경제적인 상황, 가족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에야, 우선되는 권리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판단에 앞서는 절대적인 권리가 정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통념상으로도 옳지 않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마다 우선시되어야 할 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항상 우선하는 권리는 존재하기도 어렵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샌델은 특정 권리들은 타 권리보다 중요하므로, 이 권리들은 이 공리주의 계산에 항상 우선하여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본 글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그러한 절대적인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본권끼리 충돌할 때에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기계적으로 공리주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해당 물음에 대한 답은, 앞서 살펴본 각 권리의 중요성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권끼리 충돌할 경우, 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법익 교량을 해야 한다. 법익 교량에 따라 해당 상황에서 더 중요하고 더 우선시 되어야 할 기본권이 드러나면, 그 기본권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면 된다. 이를 실체적 조화의 원칙이라고 한다. 예컨대 식물인간의 사례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이 충돌한다면, 미리 부여된 우선 순위에 따라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를 통해 해당 상황에서의 우선 순위 확정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해당 환자의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 환자의 경제적인 여건과 환경, 가족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존엄성과 생명권 간 법익 교량 과정을 거친 후, 확정된 우선 순위에 따라 결정을 하는 것이다.

실체적 조화의 원칙에 따르면, 상충하는 법익 모두가 최적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 법익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는 실체적 조화의 원칙이 어느 한 기본권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사건의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의 법익이 다른 법익에 우선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떠한 권리가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다양한 문화적, 사상적 배경과 입장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고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마다 권리의 상대적 중요성이 변한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기본권 간 충돌이 발생할 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기본권 간 충돌은 각 사안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맥락에 맞춰 해결해야 한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더 중요한 기본권을 찾아내고,  해당 기본권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면 된다.

따라서, 샌델이 제시한 논제는 그 전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특정 권리가 타 권리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그 서열을 정하기보다는, 각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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